다음은 예수는 역사다 (리 스트로벨 저) 중의 일부 내용임을 명시합니다. (206p~214p)

 

트리니티 신학교의 신약학 연구 교수인 카슨(donald A. carson)박사와의 인터뷰 내용입니다.

 

* 하나님처럼 살고 하나님처럼 용서함

 

나는 왜 그가 처음부터 예수가 하나님이라고 생각하는지에 첫 질문의 초점을 맞췄다. "예수의 어떤 말과 행동 때문에 그가 하나님이라고 확신합니까?" 라고 내가 물었다. 나는 그가 어떻게 대답할지 확실히 몰랐지만, 예수의 기적에 초점을 맞출 것이라고 예상했다. 그러나 내 생각은 빗나갔다.

 

카슨 박사는 커버가 씌워진 편안한 의자에 등을 기대면서 대답했다. "어떤 사람은 예수님의 기적을 이유로 들겠지만 예수님 아닌 다른 사람들도 기적을 행했습니다. 따라서 기적은 예수님의 신성을 암시해 주기는 하지만 결정적인 증거는 못 됩니다. 물론, 부활이 결정적으로 예수님의 신성을 입증해줍니다. 하지만 제가 생각하기에 가장 뚜렷한 증거는 그분이 죄를 용서해 주셨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요?" 나는 그의 얼굴을 좀더 잘 보기 위해 의자의 위치를 그의 의자와 똑바로 맞추면서 말했다. "어떻게 말입니까?"

 

"요점은, 만일 당신이 나에게 어떤 해로운 일을 했다면, 나에게 당신을 용서할 권리가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당신이 나에게 해를 끼쳤는데 다른 어떤 사람이 와서 '당신을 용서합니다'라고 말한다면 얼마나 뻔뻔스러운 일입니까? 오직 하나님만이 그런 의미심장한 말을 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죄는 사람에 대한 것이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과 그의 율법에 도전하는 것이기 떄문입니다.

다윗이 간통을 저지르고 밧세바의 남편을 죽게끔 했을 때, 결국 그는 시편 51편에서 '내가 주께만 범죄하여 주의 목전에 악을 행하였사오니'라고 하나님께 고백합니다. 다윗은 자신이 사람들에게 죄를 지었음에도 불구하고 궁극적으로는 자신을 만드신 하나님꼐 죄를 지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먼저 하나님께서 그의 죄를 용서해야 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인들에게 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희의 죄를 용서한다' 유대인들은 그 말이 신성 모독적이라고 생각하면서 즉시 이렇게 반응했습니다. '하나님 외에 누가 죄를 용서할 수 있느냐?' 저는 예수님께서 죄를 용서하신다고 선언하는 부분이 예쑤님의 사역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대목이라고 생각합니다."

 

나는 "예수는 죄를 용서했을 뿐 아니라 자신에게는 죄가 없다고 단언했습니다. 죄가 없다는 것은 분명히 하나님의 속성입니다."하고 말했다.

"그렇습니다. 서구 역사를 통틀어 가장 거룩하다고 인정받은 사람들은 자신의 허물과 죄를 가장 잘 깨달았던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이 단점 많고 정욕에 빠져 있고 분노가 가득 차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은혜를 의지하면서 정직하게 그런 죄들과 싸웠습니다. 사실 그들은 죄와 잘 싸웠기 때문에 사람들의 주목을 받았고 사람들은 그들을 일컬어서 '거룩한 사람'이라고 불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보십시오. 어느 누가 얼굴을 똑바로 들고서 '너희 중에 누가 나를 정죄할 수 있느냐'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만약 제가 그렇게 말했다면 제 집사람과 아이들과 나를 아는 모든 사람들은 즉시 들고일어나서 저의 죄를 낱낱이 증언할 겁니다. 하지만 어느 누구도 예수님에게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도덕적으로 완전한 것과 죄를 용서하는 것은 의심의 여지 없이 하나님만이 갖고 계신 특성이다. 하지만 예수와 하나님의 모습이 일치하려면 이 외에도 몇 가지 속성들이 더 있어야 한다. 이제 그것들을 살펴볼 때였다. 처음인지라 카슨 박사에게 느리고 굼뜬 공을 던졌지만 이제는 커브를 던질 준비가 되어 있었다. (옮긴이 주 : 이 글은 비판적인 입장에서 신학자에게 질문을 던지는 방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 창조물인가 피조물인가?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존재해 오신 지음 받지 않은 분이시다. 예수가 하나님이라면 이 부분에서도 일치해야 한다. 이사야서 57장 15절은 하나님을 '영존하시는 분'이라고 묘사한다. 하지만 예수는 지음 받은 존재라고 분명히 말하는 것처럼 보이는 구절이 몇 개 있다. 나는 카슨 박사에게 그 구절들에 대해 말했다. "한 예로, 요한복음 3장 16절에서는 예수가 하나님께서 '낳으신' 아들이라고 나옵니다. 그리고 골로새서 1장 15절은 그가 '모든 창조물보다 먼저 나신 자'라고 말씀합니다. 이 구절들에는 에수가 창조자가 아니라 피조된 존재라고 명백히 암시되어 있지 않습니까?"

카슨박사의 전공분야 중의 하나는 헬라어 문법이기 때문에 그는 헬라어 원문을 가지고 두 구절을 설명했다.

 

"요한복음 3장 16절부터 살펴보죠. 헬라어 원문을 '독생자'라는 말로 번역한 성경은 KJV입니다. 이 번역이 맞는 번역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흔히 그 구절을 성육신 - 즉, 처녀 마리아의 몸에서 나셨다는 사실-과 연관시킵니다. 하지만 사실 그것은 헬라어 본문의 원래 의미가 아닙니다.

그 말은 '유일한 분'이라는 의미입니다. 1세기에는 그 말이 '유일하고 가장 사랑하는'이란 의미로 자주 쓰였습니다. 따라서 요한복음 3장 16절은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시는 유일한 아들'이라는, 혹은 NIV가 번역한 것처럼 '하나뿐이고 유일한 아들'이라는 사실을 말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가 존재론적으로 때에 맞춰 태어났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그렇다고 해도 한 구절이 또 남아 있습니다."라고 나는 지적했다.

 

"좋습니다. 골로새서 1장 15절도 살펴보죠. 그 구절에는 '먼저 나신'이라는 단어가 나옵니다. 보수주의자든 자유주의자든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인정합니다. 구약에서 '장자'는 상속 법에 따라 일반적으로 유산의 대부분을 상속받았습니다. 왕가에서는 장자가 왕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장자는 궁극적으로 아버지의 모든 권리를 가지고 있는 유일한 존재였습니다.

기원 전 2세기 무렵 어떤 곳에서는 더 이상 그 단어가 '실제로 낳았다'든지 '처음 태어난 자'라는 개념이 아니었습니다. 정당한 상속자의 지위에 걸맞은 군위라는 의미였습니다. 예수님께도 그런 의미로 사용되었습니다. 이것은 사실 모든 학자들이 인정하는 바입니다. 따라서 '먼저 나신'이란 표현은 조금 혼동을 일으키는 말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번역하는 것이 더 좋을까요?"

 

박사는 "'최고 상속자'라는 말이 더 적절한 번역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대답했다.

그것으로 골로새서 1장 15절이 설명되었는데도 카슨 박사는 마지막으로 한 가지를 더 지적했다.

 

"만일 골로새서 1장 15절을 주석하려고 한다면, 골로새서 2장 9절까지의 문맥 안에서 주석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2장 9절에서 저자는 '그(그리스도)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라고 강조합니다. 저자는 모순된 말을 하지 않습니다. '먼저 나신'이란 말은 하나님의 충만하심을 소유한다'라는 의미를 지닌 문맥의 일부분에 속하기 때문에, 예수님의 영원성을 부정하는 말이 아닙니다."

그의 대답으로 문제는 완전히 해결되었다. 하지만 문제가 되는 구절들이 또 있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0장에 보면, 누군가가 예수를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르자 예수는 이렇게 대답했다.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그렇게 말씀하신 것은 스스로 하나님이심을 부인하신 것이 아닙니까?" 내가 물었다.

 

"아닙니다. 제 생각으로 예수님께서는 그 사람을 잠깐 붙들어 세우신 후 그가 말한 것을 스스로 생각해 보도록 하셨던 것 같습니다. " 카슨 박사가 설명했다. "마태복음에 있는 유사구절은 좀 더 넓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신성을 부정하셨다는 내용을 전혀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제가 보기에 예수님의 말씀은 이런 뜻입니다. '잠깐만 기다려라. 너는 왜 나를 선하다고 하느냐? 너의 말은 겸손한 뜻으로 안부를 묻는 말이냐? 선하다는 말이 무슨 뜻이냐? 나를 선한 선생이라고 부르는데, 내가 듣기 좋으라는 말이냐?'

근본적인 의미에서, 선하신 분은 하나님 한 분뿐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말씀은 '그러니까 나를 선하다고 하지 말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너는 정말로 네가 하는 말의 의미를 이해하고 있느냐? 하나님께로만 돌려져야 할 그 말이 정말로 나에게도 해당된다고 생각하느냐?'라는 의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 속에서 두 가지 의미를 뽑아 낼 수 있습니다. 하나는 '네가 말한대로 나는 그런 사람이다. 아주 정확하게 말했구나'이고 또 하나는 '감히 나를 그렇게 부르지 마라. 다음 번에는 나를 '죄인 예수'라고 불러라. 나도 똑같은 죄인이다'입니다. 예수님께서 다른 곳에서 말하고 행동한 것들을 볼 때, 둘 중 어느쪽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겠습니까? "

 

수많은 성경 구절들이 예수를 '죄 없는', '거룩한', '의로운', '무죄한', '순결한' 그리고 '죄인들과 구별된' 분이라고 일컫는다. 그렇다면 대답은 분명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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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인 중 한명인 A 누나가 결혼을 준비할 때, H라는 선생님에게 조언을 구했었다고 합니다.

그때, 그 선생님은 A누나에게 두 가지 조언을 해주었습니다.

  1. 죽을 준비가 됐는지, (자기를 죽일 준비)
  2. 싸울 준비가 됐는지 (이해할 수 있을 때까지 조율하기를 귀찮아 하지 않을 준비)

단 두 가지 조언이지만, 참 쉽지 않은 조언 같습니다.

Posted by kkc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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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과 인접한 나라여서 그런지 몰라도, 제가 지금 거주하고 있는 몽골은 바이러스의 천국입니다.

외부인의 USB의 경우, 70%이상 바이러스에 감염되어 있고, 네트워크 바이러스 등도 상당합니다.

그래서, 윈도우 재설치 요청도 은근히 많이 들어오고, 백신은 무엇을 써야 하는지에 대한 질문도 많이 받습니다.

개인적으로 컴퓨터 바이러스에 대한 면역을 올리는 방법들을 정리해보았습니다.

1. 윈도우 보안 설정

가끔, 윈도우에 업데이트를 쓰지 않는 경우를 많이 보게 됩니다.

윈도우 업데이트는, 기본적으로 '윈도우의 보안 문제를 FIX'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보안을 위해서는 꼭 해주는 것이 좋습니다.

추가로, 윈도우 계정에는 암호를 설치하는 것이 좋습니다. 왜냐하면, 동일 네트워크상의 다른 컴퓨터가 감염된 경우 영향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2. 백신 선택

가끔, 사람들이 윈도우 재설치 요청으로 컴퓨터를 들고 올 때, 많은 경우 '알약'이 백신으로 깔려 있습니다.

알약은 나쁘지 않은 백신이라고 생각하지만, 바이러스의 특징 상 95%의 검진율을 가지고 있는 백신이라도, 남은 5%의 확률로 바이러스에 감염되면 컴퓨터는 바보됩니다.

특히, 인터넷의 발달로 바이러스가 보편화 된 요즘은, 더욱 조심해야 합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는 백신은 유료 백신은 노턴 백신을 무료 백신은 MSE(마이크로 소프트 백신)을 추천합니다.

두 백신 모두 인터페이스가 직관적이고, 검진율이 높습니다.

 

개인적으로 추천하지 않는 백신은 알약, 하우리입니다. 이유는 단순합니다. 검진율이 낮기 때문입니다. 그 외로, V3의 경우 요즘 검진율을 높이고, 외국의 백신 테스트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두는 등 선전하고 있지만, V3를 깐 이후, 바이러스에 걸린 적이 몇 번 있는 저로써는, 한번 잃은 신뢰를 회복하기란 쉽지 않네요.

(아래 AhnLab이 V3입니다. 60%정도의 결과를 보여주네요. 하우리는 인증을 통과하지 못하였습니다. 알약은 목록에서 찾아 볼 수 없군요.)

출처: http://www.virusbtn.com/vb100/rap-index

자세한 것을 보고 싶은 분은 이 링크를 참조하세요: http://www.virusbtn.com/vb100/archive/summary

 

또 한가지 중요한 점은, 백신 업데이트입니다. 의외로 이를 간과하는 분들이 많이 있는데요. 귀찮더라도 이것만 잘 지켜주셔도 검진률이 비약적으로 올라갑니다 ^^

그리고, 백신을 2개 깔면 바이러스를 더 잘 잡지 않을까 해서 2개씩 까시는 분들 있는데요. 결론만 말씀드리면 오히려 백신간 충돌이 발생할 수 있으며, 권장되지 않습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바이러스에 걸리고 싶지 않으시다면..

  • 윈도우 업데이트 꾸준히 하세요
  • 백신은 위 도표를 참고해서 높은 검진율을 가진 백신을 하나 잡으세요.
    • 바이로봇, 알약은 그야말로 무난합니다….
  • 백신 업데이트도 중요합니다 :)
  • 백신은 하나만 까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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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MAT OG, CR, 79

GMAT 일기장 2011. 3. 2. 01:59

When hypnotized subjects are told that they are deaf and are then asked whether they can hear the hypnotist, they reply, "No." Some theorists try to explain this result by arguing that the selves of hypnotized subjects are dissociated into separate parts, and that the part that is deaf is dissociated from the part that replies.

최면술사가 사람들에게 '청각장애'라는 최면을 걸고, 그들에게 "들려요?"라고 했을 때 그들은 "아뇨"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몇몇 이론가들은 가설을 세웠습니다.

(1) "최면 상태에서 최면에 걸린 사람의 자아는 각각 독립적으로 분리되어 있고,
(2) 즉, 최면상태의 "청각장애(part that deaf)"라는 파트는, "대답(part that reply)" 이라는 파트와 각각 나누어져 있다.

Which of the following challenges indicates the most serious weakness in the attempted explanation described above?
이론가들의 가설을 약화시키는 것은?

(A) Why does the part that replies not answer, "Yes"?

왜 대답 파트는(part of that replies)는 "예" 라고 대답하지 않았는지?

(B) Why are the observed facts in need of any special explanation?

(C) Why do the subjects appear to accept the hypnotist's suggestion that they are deaf?

(D) Why do hypnotized subjects all respond the same way in the situation described?

(E) Why are the separate parts of the self the same for all subjects?

 

이론가들의 가설처럼, 자아들이 서로 연계되어 있지 않고, 분리되어 있다면… (part that is replies 와 part that is deaf는 서로 별개(distinct)의 존재 )
"part that is replies"는 내가 청각장애인지 아닌지 인지하지 못하고 있어야 합니다.

즉, "들려요"라는 질문에 "아뇨"라고 대답한 것은, replies파트와 deaf파트간에 서로 내용을 공유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만약, 정말 각 parts가 서로 분리되어 있는 상태였다면, "들려요?" 라고 물었을 때 "네"라고 했을 것입니다.

Posted by kkc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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