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악된 행동을 직면하여 그것을 변화시키지 않았고,

능력과 은사들을 개발하여 사용하지 않았고,

그렇게 몇 주가 몇 달로,

몇 달은 몇 년으로 이어져,

어느 날 당신은 당신이 살지 못했던 삶을 되돌아보네.

친밀하고 솔직한 대화를 결코 하지 않았고,

위대하고 담대한 기도를 결코 하지 않았고,

모험을 감행하는 즐거움을 몰랐고,

희생의 헌물을 드리지 않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지 않았네.

이제 당신은 시든 영혼과

잊혀진 꿈에 기대어 앉아 있네.

그리고 절박한 필요를 가진 세상과

당신을 당신 자신보다 더 큰 일의 일부로 부르시는 크신 하나님이 계셨다는 것을 깨닫네.

당신은, 될 수 있었지만 결국 되지 못한 사람을 보네.

당신은 당신의 소명을 따르지 않았네.

당신은 결코 배 밖으로 나가지 않았네.

 

- 그렉 르보이 / 영혼의 냉담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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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09)에는 없었던 것 같은데, 2010년과 2011년 사이의 겨울에는 수후바타르 광장 앞에 스케이트장이 생겨 있었습니다.
그것도 무려… 그냥 "물을 부었는데 스케이트장이 생겼어요!" 정도의 스케일이네요. :)

Posted by kkc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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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은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유 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자유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여러분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입니까? 물론 우리들은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고, 영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움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유함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하셨는데, 그때 유대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그때 예수님은 대답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 (요 8:33-34)"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이 우리에게 늘 기쁨과 자유를 선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교사인 찰스 트럼불(Charles Trumbull)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에게 있어 영적인 삶과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나는 영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느끼며 살아갔지만, 때로는 바닥을 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힘있는 부흥 집회, 헌신되고 구별된 크리스천 리더의 설교나, 영적인 책이나, 예배에서 헌신된 기도를 드리고 나면, 나는 기쁨을 느끼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진 기분과 함께 내 영적 삶이 더 깊어진 것처럼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때로, 작은 유혹들에 넘어지거나, 점진적인 영적 내리막을 걷게 될 때면, 나의 좋았던 경험들은 다 잃어버리고, 비참한 상태에 빠진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 Grace Walk, Steve McVEY, pp.16

 

이러한 고백은, 많은 크리스천들이 고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부흥 집회를 갈 때나, 기도와 성경공부로 시간을 보낼 때는,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삶 속에서 작은 유혹들에 넘어지거나,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문제에 부딪칠 때면, 우리는 패배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우리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을 때에도, 내가 크리스천으로 행하고 살아야 하는 것들을 하지 않을 때면, 죄책감과 책임감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약속하고, 성경을 더 읽고, 기도를 더하고, 전도를 더하고,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비참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1)

이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0.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 로마서 7장 18-25 (표준새번역)

 

본문 7장 21절에서 바울은 죄의 속성을 법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법칙이란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 필연적인 불변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예를 들면, 여러분이 성경책을 높이 들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길게 세 시간은 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결국 이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만류인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일하게, 우리는 하루, 이틀, 한달, 그리고 길게는 몇 년 동안 정결하게 살아갈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2) 하지만, 우리는 결국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따르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싸우더라도 선해질 수 없는 희망 없는 존재들입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바울은 로마서 8장을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가 완전해 질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완전하지 않지만 정죄를 받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로마서 8장 1-4 (표준새번역)

 

바울이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율법에 의한 죽음의 법과, 성령의 법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율법간의 관계를 결혼생활에 비유하였습니다. 율법과의 결혼은 불행합니다. 해야 하는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배우자의 율법에 의해서 집에서 설거지를 하루에 2번씩 해야 하고, 주 3회 청소기를 돌리고 주 2회 물청소를 해야 합니다. 당신은 7시 이후 TV를 보지 말 지며, 무한도전을 삼가야 합니다. 그 외에도 135가지 집안일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집안과 나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이 일들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배우자가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 일들을 지키지 않을 때마다, 나는 배우자에 대한 두려움과 정죄감에 사로잡혀 마음을 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된 결혼 생활이 아닙니다. 이는 불행한 결혼 생활입니다. 이러한 결혼 생활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말합니다.

2. 결혼한 여자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풀려납니다.

3. 그러므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로 가면, 그 여자는 간음한 여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는 것이므로, 다른 남자에게로 갈지라도 간음한 여자가 되지 않습니다.

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5. 이전에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죄의 욕정이 우리 몸의 지체 안에서 작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6. 그러나 지금은, 우리를 옭아맸던 것에 대하여 죽어서, 율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 로마서 7장 2-6 (표준새번역)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우리도 함께 죽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 표준새번역) 바울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을 정의하며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못이 박힐 것이라는 미래형이나 지금 못을 박아야 한다는 현재형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이미 이루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진리 안에 설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줍니다. 바울은 바로 이 자유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죄를 받지 않기 때문에, 죄는 우리를 구속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정죄감의 감정은 여전히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을 따라 살지 못하는 삶 속에서 나쁜 일이 발생하면,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죄 속에 빠져 있을 때마다 하늘에서 분노를 참고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교회 일을 하고, 성경을 읽고, 착한 일을 하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고, 죄 속에 허우적거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은 우리의 상태가 사랑 받을 만 해서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이 구원을 받을 만하고, 앞으로 죄 짓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당신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로마서 5:8: 표준새번역)"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존재이고, 완전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만약 우리가 완전하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죄의 불완전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 경험합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5:5). 마틴 루터는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인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와 동일하게, 성경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기 때문에 선하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된다고 말합니다. 죄의 정말 무서운 점은 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인간의 생명에 하는 일은 가지치기용 가위가 한 떨기 꽃에 하는 일과 같습니다. 줄기를 잘라내면 꽃은 생명의 원천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처음 얼마간이야 물론 여전히 색깔도 곱고 싱싱하고 보기도 좋지만 시간을 두고서 그 꽃을 관찰해보면 잎은 시들고 꽃잎은 떨어질 것입니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도 꽃은 결코 다시 되살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꽃 주위에 물을 뿌리고, 꽃줄기에 흙을 심고, 비료를 주고, 접착제로 꽃을 다시 원줄기에 붙여보더라도, 그 꽃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잘려나간 영혼은 시들고, 결국 죽게 됩니다. 죄는 결과적으로 하루를 망치거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영혼의 죽음을 초래합니다. 3) 죄의 가장 큰 파급력은 죄책감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 그리고 이로 인한 영혼의 죽음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조금도 나아지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피해야 할 죄들에 집중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죄로 인도합니다. 이는 다이어트를 하기를 원하는 우리가, 매일 매일 피자헛의 메뉴를 묵상하는 것이나, 담배를 끊기를 원하는 우리가, 매일 "난 담배를 끊어야지"하고 아침마다 다짐하며 담배를 묵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모티브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를 사랑하면, 네가 율법을 지킴으로 보여주어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당연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는 뜻입니다. 조금 전 결혼 생활의 예와 같이, 우리가 정말 배우자를 사랑한다면, 배우자를 위해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배우자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3:10)

나눔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워런 W. 위어스비는 로마서 8장을 그리스도인의 자유 선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단은 계속하여 당신에 대해서 참소하며 정죄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이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15) 우리는 율법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고, 은혜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 무엇도 이 진리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진리가, 진실로 우리를 자유케 하기를 소원합니다.

31.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 로마서 8장 31-39절: 표준새번역

 

1)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은 분은 '은혜가 내 안으로 들어오다 (스티브 맥베이)'를 참고하세요.
2) 이 비유는 이경욱 선교사님의 강의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3) 이 비유는 예전에 어떤 책에서 메모해놓았던 것인데,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네요. 아는 분은 알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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옛날 어느 산성에 다섯 형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맏형은 아버지께 순종했으나 나머지 네 아들들은 아버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산 아래 흐르는 강가에 가지 말라고 늘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맏형을 제외한 네 아들들은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물살에 떠내려갈지 모르니 강변 가까이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아들들은 강가에 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네 명의 반항적인 아들들은 매일 조금씩 강 가까이 다가갔고 결국에는 그 중 한 형제가 배짱 좋게 강물에 손을 대보려고 하기까지 했다.

"물에 빠지지 않도록 내 손을 꼭 잡아줘."

다른 세 명의 형제들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가 강물에 손을 집어넣자마자 강한 물살이 그와 그의 형제들을 급류 속으로 삼켜버렸고 그들을 강 하류로 급하게 밀어내렸다.

 

암초에 몸이 튕겨져 나가는가 하면 소리소리 지르며 무서운 속도로 떠밀려 내려가기도 하고 솟구치는 물살에 두둥실 떠오르기도 했다. 살려달라는 외침은 포효하는 강물소리에 파묻혀버렸다.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강한 물살을 거스를 힘이 없었다. 몇 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그들은 강물의 무서운 힘에 굴복하고 말았다. 강물은 마침내 낯선 땅, 먼 나라, 척박한 곳의 한 강가에 그들을 토해냈다.

그 땅에는 야만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은 그들의 고향처럼 안전한 곳도 못 되었다.

그 땅은 사방이 바위투성이의 산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그곳은 그들의 고향처럼 살기 좋아보이는 곳이 아니었다.

네 형제는 자신들이 어디에 와 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알았다. 아무도 이런 곳에 올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린 네 아들은 한동안 강 언덕에 누워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리둥절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들은 용기를 내어 다시 강가로 향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 거셌다. 강의 가장자리로 걸어가려는 것도 땅이 너무 험해서 쉽지 않았다. 산으로 올라갈 생각도 했으나 너무 높았고 게다가 그곳 지리에 익숙치도 못했다.

결국, 그들은 한곳에 불을 피우고 불가에 둘러앉았다.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어야 했는데... "

모두가 공감하는 바였다.

"집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어."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들은 낯선 땅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나무 열매를 따먹는가 하면, 동물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기도 했다. 그들은 고향 땅을 잊지 않을 뿐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리라는 희망도 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매일 날이 밝으면 그들은 먹을 것을 구하고 거처를 마련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불을 피워놓고 아버지와 큰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형제는 아버지와 큰형을 다시 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둘째 아들 -롬 1:18-32

그러던 어느 날 밤, 둘째 형이 불가에 오지 않았다. 나머지 세 형제는 다음날 아침 그가 미개인들과 함께 계곡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풀과 진흙으로 오두막을 짓고 있었다.

"허구한 날 이야기만 하는 것에 질렸어. 지난 일을 기억한들 무슨 소용이 있지? 게다가 이곳은 살기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나는 여기에 멋진 집을 짓고 정착하겠어."

"하지만 여기는 우리 고향 땅이 아닌 걸."

나머지 형제들이 반대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너희들이 고향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이곳이 새로운 고향이 될 수 있어."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아버지가 어떻다는 거야? 아버진 여기에 안 계셔. 가까이 계시지도 않고, 언제까지 아버지가 이곳에 와 주시기만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허비해야겠니? 나는 요사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있어. 새로운 생활방식도 배우고 있지. 아버지가 오시게 되면 오시는 거고, 그렇다고 숨을 죽이고 살지는 않겠다는 말이야."

하는 수 없이 나머지 세 형제들은 오두막을 짓고 있는 둘째 형을 남겨두고 돌아왔다. 그들은 다시 불가에 둘러앉아 고향 얘기를 하며 귀향을 꿈꾸었다.

 

셋째 아들 -롬 2:1-11

어느 날 셋째가 불가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두 형제는 셋째 형이 산허리에서 둘째 형의 오두막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이지 역겨워서 봐줄 수가 없어."

셋째 형은 동생들이 다가오자 그들에게 말했다.

"둘째 형은 완전히 실패자야. 우리 집안의 모욕거리라고. 너희들은 둘째 형이 한 짓보다 더 비열한 행동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오두막을 세우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겠다고?"

"둘째 형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야."

막내가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우리도 잘못한 것은 마찬가지잖아. 우리는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했어. 강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모두 강가에 갔잖아. 우리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했어."

"글쎄, 우리가 한두 가지 실수를 했을는지는 몰라도 저기 저 오두막에 있는 비열한 형에 비하면 우리는 성인이나 마찬가지야. 아버지는 우리 세 형제의 죄는 가볍게 넘기시겠지만 둘째형에게는 분명히 벌을 주실 거야."

"형, 우리에게로 돌아와. 돌아와서 우리랑 얘기 나누면서 지내자."

동생들이 간청했다.

"아니, 나는 여기에서 둘째 형을 감시할 거야. 우리 중 누군가는 여기 이렇게 서서 둘째 형의 잘못된 행동들을 자세히 적어두었다가 아버지께 보여드려야 하니까."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어 두 동생은 그들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둘째 형은 오두막을 짓고 셋째 형은 그를 감시했다.

 

넷째 아들 -롬 2:17-3:20

나머지 두 아들은 불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고향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막내아들은 잠에서 깨어나 옆에 있어야 할 넷째형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넷째형을 찾아 나섰다. 넷째는 강가에서 바위를 쌓고 있었다.

"기다려봐야 아무 소용없어."

바위를 쌓고 있던 넷째 형은 막내 동생이 다가오자 일을 계속하면서 자기 생각을 밝혔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여기까지 오시지는 않을 거야. 내가 아버지께 가야 해. 나는 아버지께 큰 죄를 범했어. 아버지를 모욕하고 실망시켜드렸어. 이제 남은 선택은 한 가지뿐이야. 강을 거슬러 올라갈 길을 만들어 아버지께 돌아갈 거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가 계신 성에 이를 때까지 바위를 쌓고 또 쌓을 거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일했는지 아버지께서 보신다면 당장 성문을 열고 나를 집안으로 맞아주실 거야."

 

큰 아들과 막내 아들 -롬 3:21-35

막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다시 불가로 돌아왔다. 이제 그 혼자였다. 어느 날 아침 막내는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나를 보내셨다."

막내는 눈을 들어 큰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 우리를 데리러 와 주었구나!"

막내는 기뻐 소리쳤다. 큰형과 막내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꼭 껴안았다.

"네 형들은 어디 있니?"

큰형이 물었다.

"둘째 형은 이곳에 집을 지었고, 셋째 형은 둘째 형을 감시하고 있어. 그리고 넷째 형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길을 만들고 있고."

큰형은 나머지 형제들을 찾아 나섰다. 그는 먼저 풀로 엮어 만든 오두막을 찾아 계곡으로 향했다.

"썩 물러가시오!"

둘째가 창문 너머에서 소리쳤다.

"남의 집 앞에서 함부로 얼쩡거리지 말란 말이오!"

"너를 집에 데려가려고 이렇게 온 거야."

"그게 아니겠지. 내 저택을 빼앗으러 온 거겠지."

"이건 저택이 아니야. 보잘것없는 오두막일 뿐이라고."

첫째가 응수했다.

"이건 저택이오! 이 저지(低地)에서는 가장 좋은 집이란 말이오. 내가 손수 이 저택을 지었소. 그러니 당장 가시오. 누구도 내 저택을 넘볼 수 없소."

"아버지가 계신 집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니?"

"내게 아버지 따윈 없소이다."

"넌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산 위의 큰 성에서 태어났어. 그곳은 매우 따뜻하고 과일도 많이 열리는 곳이지. 너희들이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하는 바람에 머나먼 이곳까지 오게 된거고. 그래서 내가 너희를 데리러 온 거야."

그러자 둘째는 꿈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내는 듯한 표정으로 창문 너머로 큰형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집안에 있던 미개인들이 갑자기 창가로 몰려나와 소리쳤다.

"침입자, 썩 꺼져버려! 여긴 당신 고향이 아니야."

"당신들 말이 맞소."

큰형이 응수했다.

"하지만 여긴 내 동생의 고향도 아니란 말이오."

이때 두 형제의 눈길이 다시 마주쳤다. 오두막을 지은 둘째는 한번 더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으나 이미 미개인들에게 빼앗겨버린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저놈은 당신의 저택을 탐내고 있는 거야. 어서 쫓아버려!"

그들이 소리쳤다.

둘째는 그들의 말에 따라 형을 내쫓았다.

이제 큰형은 셋째를 찾아 나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야만인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오두막 근처의 언덕에 앉아 둘째를 감시하고 있었다. 큰형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가 환성을 질렀다.

"큰형이 이렇게 와서 둘째 형의 소행을 보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야! 둘째형이 아버지 산성을 완전히 등지고 있는 걸 알아? 고향집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형이 이렇게 와줄 줄 알았어. 그동안 둘째형이 저질러온 소행을 빠짐없이 기록해놓았지. 둘째형을 혼내줘! 내가 옆에서 거들어줄 테니까. 둘째 형은 욕을 먹어 마땅해! 형, 어서 시작해."

첫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보다 먼저 네 죄부터 처리할 필요가 있겠구나."

"내 죄라니?"

"너도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어."

셋째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 그거? 내 죄는 아무것도 아니야. 저기에 진짜 죄인이 있다고."

그는 손으로 오두막 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곳에 살고 있는 미개인들에 대해 말해볼게."

"먼저 네 자신에 대해서 말해보지 않겠니?"

"내 문제는 걱정할 것 없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줄게."

셋째는 오두막을 향해 달려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보자, 형. 창문으로 오두막 안을 들여다보자고. 둘째형은 나를 알아보지 못해. 같이 가, 형."

그는 오두막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큰형이 자기를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번에 첫째는 강가로 향했다. 거기에서 넷째를 발견했다. 그는 무릎까지 물이 차는 것도 아랑곳없이 바위를 쌓아올리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너희를 데려오라고 나를 보내셨다."

넷째는 큰형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어. 일해야 해."

"아버지는 너희들이 잘못을 범한 사실을 알고 계셔. 하지만 너희들을 용서해주실...."

"그래, 용서해주실지도 모르지."

넷째가 첫째의 말머리를 끊었다. 그는 거센 물살에 밀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내가 먼저 산성에 도달해야 해. 강을 거슬러 올라갈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우선은 아버지께 내가 얼마나 훌륭한 아들인지 보여드리고, 그 다음에 용서를 구할 거야."

"아버지는 이미 너희들을 용서하셨어. 집으로 데려가는 일은 내게 맡겨. 아무리 애써도 너는 그 길을 만들지 못할 거야. 강은 생각보다 무척 길거든. 이 일은 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야. 아버지께서 너희를 데려오라고 나를 보내셨어. 그러니 내 말을 들으렴."

바위를 쌓던 넷째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큰형을 쳐다보았다.

"형,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어? 아버지는 그렇게 쉽사리 잘못을 용서해주시는 분이 아니셔. 나는 죄를 지었어. 그것도 아주 심각한 죄를 지었다고! 아버지께서 강을 멀리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에 불순종했어.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이야. 난 더 많이 일해야 해."

"그렇지 않아. 넷째야. 그렇게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돼. 네게 필요한 건 노역이 아니라 큰 은혜란다. 여기서 아버지 집은 머무 멀리 떨어져 있어. 고향집까지 길을 놓을 힘도 모자랄 뿐 아니라 바위도 턱없이 부족해. 아버지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를 보내셨어. 너희들을 집에 데려오기를 원하고 계셔."

"지금 내가 이 일을 못할 거라고 말하는 거야? 이 일을 하기에는 내 힘이 부족하다고? 내가 닦아놓은 길을 봐. 튼튼한 바윗길을 보란 말이야. 이미 다섯 걸음이나 왔는걸!"

"하지만 앞으로도 수백만 킬로미터는 더 가야 해!"

넷째는 씩씩거리며 큰형을 노려보았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 당신은 악마야. 나를 꾀어서 이 거룩한 사역을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거, 다 안다고! 독사 같은 놈, 내 뒤로 물러나거라!"

그는 이제 막 쌓으려던 돌덩이를 큰형에게 집어던졌다.

그러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이단자, 당장 이 땅을 떠나버려! 당신은 나를 방해하지 못해! 나는 이 길을 완성한 후에 아버지 앞에 당당히 나갈 거야. 그러면 아버지께서도 나를 용서해주실 거야. 내 힘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내고 말거야. 아버지의 자비를 얻어내고 말 거라고!"

첫째는 고개를 저었다.

"쟁취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란다.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자비도 자비가 아니고. 이렇게 간청하니 이 형이 너를 데리고 가게 해다오."

넷째는 대답 대신 바윗덩어리를 집어던졌다. 큰형은 하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막내는 불가에 앉아 큰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형들은 안 와?"

"응, 안 오겠대. 둘째는 욕망의 삶을, 셋째는 비판의 삶을, 넷째는 고역의 삶을 택했더구나. 우리 아버지를 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래서 다들 이곳에 계속 남아 있겠다고 한단 말이야?"

큰형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은 그래."

"우리는 아버지께 돌아갈 거지?"

막내가 물었다.

"그러자꾸나."

"아버지께서 나를 용서하실까?"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나를 보내셨겠니?"

결국 막내는 큰형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올랐다.

 

* 은혜가 내 안으로 들어오다(11~21p) - 맥스 루카도

Posted by kkc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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