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어느 산성에 다섯 형제가 아버지를 모시고 살고 있었다.

맏형은 아버지께 순종했으나 나머지 네 아들들은 아버지 말을 잘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아들들에게 산 아래 흐르는 강가에 가지 말라고 늘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맏형을 제외한 네 아들들은 이 말을 귀담아 듣지 않았다. 아버지는 물살에 떠내려갈지 모르니 강변 가까이는 얼씬도 하지 말라고 신신당부했지만 아들들은 강가에 가고 싶은 유혹을 뿌리칠 수 없었다.

네 명의 반항적인 아들들은 매일 조금씩 강 가까이 다가갔고 결국에는 그 중 한 형제가 배짱 좋게 강물에 손을 대보려고 하기까지 했다.

"물에 빠지지 않도록 내 손을 꼭 잡아줘."

다른 세 명의 형제들이 그의 손을 붙잡았다. 그러나 그가 강물에 손을 집어넣자마자 강한 물살이 그와 그의 형제들을 급류 속으로 삼켜버렸고 그들을 강 하류로 급하게 밀어내렸다.

 

암초에 몸이 튕겨져 나가는가 하면 소리소리 지르며 무서운 속도로 떠밀려 내려가기도 하고 솟구치는 물살에 두둥실 떠오르기도 했다. 살려달라는 외침은 포효하는 강물소리에 파묻혀버렸다.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강한 물살을 거스를 힘이 없었다. 몇 시간 동안의 사투 끝에 그들은 강물의 무서운 힘에 굴복하고 말았다. 강물은 마침내 낯선 땅, 먼 나라, 척박한 곳의 한 강가에 그들을 토해냈다.

그 땅에는 야만인들이 살고 있었다. 그곳은 그들의 고향처럼 안전한 곳도 못 되었다.

그 땅은 사방이 바위투성이의 산으로 둘러쳐져 있었다. 그곳은 그들의 고향처럼 살기 좋아보이는 곳이 아니었다.

네 형제는 자신들이 어디에 와 있는지는 알지 못했지만 한 가지 사실만은 확실히 알았다. 아무도 이런 곳에 올 생각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어린 네 아들은 한동안 강 언덕에 누워 있었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에 어리둥절하여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다. 시간이 조금 흐른 뒤 그들은 용기를 내어 다시 강가로 향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갈 작정이었다. 하지만 물살이 너무 거셌다. 강의 가장자리로 걸어가려는 것도 땅이 너무 험해서 쉽지 않았다. 산으로 올라갈 생각도 했으나 너무 높았고 게다가 그곳 지리에 익숙치도 못했다.

결국, 그들은 한곳에 불을 피우고 불가에 둘러앉았다.

"아버지 말씀에 순종했어야 했는데... "

모두가 공감하는 바였다.

"집에서 너무 멀리 와버렸어."

시간이 흐르면서 아들들은 낯선 땅에서 살아남는 법을 터득하기 시작했다. 나무 열매를 따먹는가 하면, 동물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기도 했다. 그들은 고향 땅을 잊지 않을 뿐 아니라 언젠가는 다시 돌아가리라는 희망도 버리지 않으리라 다짐했다. 매일 날이 밝으면 그들은 먹을 것을 구하고 거처를 마련하는 일에 착수했다. 그리고 밤이 찾아오면 불을 피워놓고 아버지와 큰형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네 형제는 아버지와 큰형을 다시 보게 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둘째 아들 -롬 1:18-32

그러던 어느 날 밤, 둘째 형이 불가에 오지 않았다. 나머지 세 형제는 다음날 아침 그가 미개인들과 함께 계곡에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풀과 진흙으로 오두막을 짓고 있었다.

"허구한 날 이야기만 하는 것에 질렸어. 지난 일을 기억한들 무슨 소용이 있지? 게다가 이곳은 살기에 그리 나쁘지만은 않아. 나는 여기에 멋진 집을 짓고 정착하겠어."

"하지만 여기는 우리 고향 땅이 아닌 걸."

나머지 형제들이 반대했다.

"그렇긴 하지. 하지만 너희들이 고향 생각을 더 이상 하지 않으면 이곳이 새로운 고향이 될 수 있어."

"아버지는 어떻게 하고?"

"아버지가 어떻다는 거야? 아버진 여기에 안 계셔. 가까이 계시지도 않고, 언제까지 아버지가 이곳에 와 주시기만을 기다리면서 시간을 허비해야겠니? 나는 요사이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고 있어. 새로운 생활방식도 배우고 있지. 아버지가 오시게 되면 오시는 거고, 그렇다고 숨을 죽이고 살지는 않겠다는 말이야."

하는 수 없이 나머지 세 형제들은 오두막을 짓고 있는 둘째 형을 남겨두고 돌아왔다. 그들은 다시 불가에 둘러앉아 고향 얘기를 하며 귀향을 꿈꾸었다.

 

셋째 아들 -롬 2:1-11

어느 날 셋째가 불가에 나타나지 않았다. 다음날 아침 두 형제는 셋째 형이 산허리에서 둘째 형의 오두막을 바라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정말이지 역겨워서 봐줄 수가 없어."

셋째 형은 동생들이 다가오자 그들에게 말했다.

"둘째 형은 완전히 실패자야. 우리 집안의 모욕거리라고. 너희들은 둘째 형이 한 짓보다 더 비열한 행동을 상상이나 할 수 있겠니? 오두막을 세우고 아버지에 대해서는 잊어버리겠다고?"

"둘째 형이 잘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야."

막내가 동의를 표했다.

"하지만 우리도 잘못한 것은 마찬가지잖아. 우리는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했어. 강에 가지 말라고 했는데 모두 강가에 갔잖아. 우리는 아버지의 경고를 무시했어."

"글쎄, 우리가 한두 가지 실수를 했을는지는 몰라도 저기 저 오두막에 있는 비열한 형에 비하면 우리는 성인이나 마찬가지야. 아버지는 우리 세 형제의 죄는 가볍게 넘기시겠지만 둘째형에게는 분명히 벌을 주실 거야."

"형, 우리에게로 돌아와. 돌아와서 우리랑 얘기 나누면서 지내자."

동생들이 간청했다.

"아니, 나는 여기에서 둘째 형을 감시할 거야. 우리 중 누군가는 여기 이렇게 서서 둘째 형의 잘못된 행동들을 자세히 적어두었다가 아버지께 보여드려야 하니까."

더 이상 어쩔 도리가 없어 두 동생은 그들의 자리로 되돌아왔다. 둘째 형은 오두막을 짓고 셋째 형은 그를 감시했다.

 

넷째 아들 -롬 2:17-3:20

나머지 두 아들은 불가에 머물러 있었다. 그들은 서로를 격려하며 고향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던 어느 날 아침 막내아들은 잠에서 깨어나 옆에 있어야 할 넷째형이 없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넷째형을 찾아 나섰다. 넷째는 강가에서 바위를 쌓고 있었다.

"기다려봐야 아무 소용없어."

바위를 쌓고 있던 넷째 형은 막내 동생이 다가오자 일을 계속하면서 자기 생각을 밝혔다.

"아버지가 나를 위해 여기까지 오시지는 않을 거야. 내가 아버지께 가야 해. 나는 아버지께 큰 죄를 범했어. 아버지를 모욕하고 실망시켜드렸어. 이제 남은 선택은 한 가지뿐이야. 강을 거슬러 올라갈 길을 만들어 아버지께 돌아갈 거야. 물살을 거슬러 올라가 아버지가 계신 성에 이를 때까지 바위를 쌓고 또 쌓을 거야. 내가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성실하게 일했는지 아버지께서 보신다면 당장 성문을 열고 나를 집안으로 맞아주실 거야."

 

큰 아들과 막내 아들 -롬 3:21-35

막내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다시 불가로 돌아왔다. 이제 그 혼자였다. 어느 날 아침 막내는 등 뒤에서 귀에 익은 목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느꼈다.

"아버지가 너희들을 집으로 데려오라고 나를 보내셨다."

막내는 눈을 들어 큰형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형, 우리를 데리러 와 주었구나!"

막내는 기뻐 소리쳤다. 큰형과 막내는 한동안 그렇게 서로를 꼭 껴안았다.

"네 형들은 어디 있니?"

큰형이 물었다.

"둘째 형은 이곳에 집을 지었고, 셋째 형은 둘째 형을 감시하고 있어. 그리고 넷째 형은 강을 거슬러 올라가기 위해 길을 만들고 있고."

큰형은 나머지 형제들을 찾아 나섰다. 그는 먼저 풀로 엮어 만든 오두막을 찾아 계곡으로 향했다.

"썩 물러가시오!"

둘째가 창문 너머에서 소리쳤다.

"남의 집 앞에서 함부로 얼쩡거리지 말란 말이오!"

"너를 집에 데려가려고 이렇게 온 거야."

"그게 아니겠지. 내 저택을 빼앗으러 온 거겠지."

"이건 저택이 아니야. 보잘것없는 오두막일 뿐이라고."

첫째가 응수했다.

"이건 저택이오! 이 저지(低地)에서는 가장 좋은 집이란 말이오. 내가 손수 이 저택을 지었소. 그러니 당장 가시오. 누구도 내 저택을 넘볼 수 없소."

"아버지가 계신 집을 기억하지 못한단 말이니?"

"내게 아버지 따윈 없소이다."

"넌 여기에서 멀리 떨어진 산 위의 큰 성에서 태어났어. 그곳은 매우 따뜻하고 과일도 많이 열리는 곳이지. 너희들이 아버지 말씀에 불순종하는 바람에 머나먼 이곳까지 오게 된거고. 그래서 내가 너희를 데리러 온 거야."

그러자 둘째는 꿈에 본 적이 있는 사람의 얼굴을 기억해내는 듯한 표정으로 창문 너머로 큰형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었다. 집안에 있던 미개인들이 갑자기 창가로 몰려나와 소리쳤다.

"침입자, 썩 꺼져버려! 여긴 당신 고향이 아니야."

"당신들 말이 맞소."

큰형이 응수했다.

"하지만 여긴 내 동생의 고향도 아니란 말이오."

이때 두 형제의 눈길이 다시 마주쳤다. 오두막을 지은 둘째는 한번 더 마음이 요동치는 것을 느꼈으나 이미 미개인들에게 빼앗겨버린 마음을 어쩔 수 없었다.

"저놈은 당신의 저택을 탐내고 있는 거야. 어서 쫓아버려!"

그들이 소리쳤다.

둘째는 그들의 말에 따라 형을 내쫓았다.

이제 큰형은 셋째를 찾아 나섰다.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그는 야만인 마을이 한눈에 들어오는 오두막 근처의 언덕에 앉아 둘째를 감시하고 있었다. 큰형이 다가오는 것을 보고 그가 환성을 질렀다.

"큰형이 이렇게 와서 둘째 형의 소행을 보게 되어서 정말 다행이야! 둘째형이 아버지 산성을 완전히 등지고 있는 걸 알아? 고향집에 대해서는 일체 언급조차 하지 않는 것을 알고 있느냐고? 형이 이렇게 와줄 줄 알았어. 그동안 둘째형이 저질러온 소행을 빠짐없이 기록해놓았지. 둘째형을 혼내줘! 내가 옆에서 거들어줄 테니까. 둘째 형은 욕을 먹어 마땅해! 형, 어서 시작해."

첫째는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

"그보다 먼저 네 죄부터 처리할 필요가 있겠구나."

"내 죄라니?"

"너도 아버지 말씀에 순종하지 않았어."

셋째는 히죽히죽 웃으면서 손을 내저었다.

"아 그거? 내 죄는 아무것도 아니야. 저기에 진짜 죄인이 있다고."

그는 손으로 오두막 쪽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저곳에 살고 있는 미개인들에 대해 말해볼게."

"먼저 네 자신에 대해서 말해보지 않겠니?"

"내 문제는 걱정할 것 없어. 정말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이 누구인지 보여줄게."

셋째는 오두막을 향해 달려가면서 이렇게 말했다.

"가보자, 형. 창문으로 오두막 안을 들여다보자고. 둘째형은 나를 알아보지 못해. 같이 가, 형."

그는 오두막에 다다라서야 비로소 큰형이 자기를 따라오지 않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이번에 첫째는 강가로 향했다. 거기에서 넷째를 발견했다. 그는 무릎까지 물이 차는 것도 아랑곳없이 바위를 쌓아올리고 있었다.

"아버지께서 너희를 데려오라고 나를 보내셨다."

넷째는 큰형을 쳐다보지도 않았다.

"지금은 이야기할 수 없어. 일해야 해."

"아버지는 너희들이 잘못을 범한 사실을 알고 계셔. 하지만 너희들을 용서해주실...."

"그래, 용서해주실지도 모르지."

넷째가 첫째의 말머리를 끊었다. 그는 거센 물살에 밀려 넘어지지 않으려고 균형을 잡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하지만 내가 먼저 산성에 도달해야 해. 강을 거슬러 올라갈 길을 만들어야 한다고. 우선은 아버지께 내가 얼마나 훌륭한 아들인지 보여드리고, 그 다음에 용서를 구할 거야."

"아버지는 이미 너희들을 용서하셨어. 집으로 데려가는 일은 내게 맡겨. 아무리 애써도 너는 그 길을 만들지 못할 거야. 강은 생각보다 무척 길거든. 이 일은 너 혼자 힘으로는 도저히 해낼 수 없는 일이야. 아버지께서 너희를 데려오라고 나를 보내셨어. 그러니 내 말을 들으렴."

바위를 쌓던 넷째가 처음으로 고개를 들어 큰형을 쳐다보았다.

"형, 어떻게 그렇게 함부로 말할 수 있어? 아버지는 그렇게 쉽사리 잘못을 용서해주시는 분이 아니셔. 나는 죄를 지었어. 그것도 아주 심각한 죄를 지었다고! 아버지께서 강을 멀리하라고 하셨는데 나는 그 말씀에 불순종했어. 나는 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인이야. 난 더 많이 일해야 해."

"그렇지 않아. 넷째야. 그렇게 힘들여 일하지 않아도 돼. 네게 필요한 건 노역이 아니라 큰 은혜란다. 여기서 아버지 집은 머무 멀리 떨어져 있어. 고향집까지 길을 놓을 힘도 모자랄 뿐 아니라 바위도 턱없이 부족해. 아버지는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를 보내셨어. 너희들을 집에 데려오기를 원하고 계셔."

"지금 내가 이 일을 못할 거라고 말하는 거야? 이 일을 하기에는 내 힘이 부족하다고? 내가 닦아놓은 길을 봐. 튼튼한 바윗길을 보란 말이야. 이미 다섯 걸음이나 왔는걸!"

"하지만 앞으로도 수백만 킬로미터는 더 가야 해!"

넷째는 씩씩거리며 큰형을 노려보았다.

"나는 당신이 누구인지 알고 있어! 당신은 악마야. 나를 꾀어서 이 거룩한 사역을 못하게 하려고 하는 거, 다 안다고! 독사 같은 놈, 내 뒤로 물러나거라!"

그는 이제 막 쌓으려던 돌덩이를 큰형에게 집어던졌다.

그러면서 이렇게 소리쳤다.

"이단자, 당장 이 땅을 떠나버려! 당신은 나를 방해하지 못해! 나는 이 길을 완성한 후에 아버지 앞에 당당히 나갈 거야. 그러면 아버지께서도 나를 용서해주실 거야. 내 힘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얻어내고 말거야. 아버지의 자비를 얻어내고 말 거라고!"

첫째는 고개를 저었다.

"쟁취한 사랑은 진정한 사랑이 아니란다. 스스로 노력하여 얻은 자비도 자비가 아니고. 이렇게 간청하니 이 형이 너를 데리고 가게 해다오."

넷째는 대답 대신 바윗덩어리를 집어던졌다. 큰형은 하는 수 없이 그 자리를 떠났다.

막내는 불가에 앉아 큰형이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다른 형들은 안 와?"

"응, 안 오겠대. 둘째는 욕망의 삶을, 셋째는 비판의 삶을, 넷째는 고역의 삶을 택했더구나. 우리 아버지를 택한 사람은 아무도 없어."

"그래서 다들 이곳에 계속 남아 있겠다고 한단 말이야?"

큰형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지금은 그래."

"우리는 아버지께 돌아갈 거지?"

막내가 물었다.

"그러자꾸나."

"아버지께서 나를 용서하실까?"

"용서하지 않으신다면 나를 보내셨겠니?"

결국 막내는 큰형의 등에 업혀 집으로 돌아가는 여행길에 올랐다.

 

* 은혜가 내 안으로 들어오다(11~21p) - 맥스 루카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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