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 친구들과 함께 성경공부를 할 때, 어떤 분이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습니다.

 

종교의 특징은 사람이 신을 두려워하도록 만들어 그 두려움으로 사람을 옭아맨다는 내용. , 인간이 신을 경외하는 것은 신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라는 이야기였습니다. 그때 이 이야기를 듣던  한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한 것이 기억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이끄시는 것은 두려움이 아니라 사랑이라는 말이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사랑을 다양하게 정의하고 있는데, 최근 읽은 장영희씨의 수필집의 사랑과 생명이라는 글에서는 사랑에 대한 여러 정의를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그 중 몇 가지를 소개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사랑에는 두려움이 없다. 완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쫓는다 -<요한 1 4 18>

삶의 무게와 고통에서 자유롭게 해 주는 한마디의 말, 그것은 사랑이다.” – <소포클레스>

삶에 있어 최상의 행복은 우리가 사랑 받고 있다는 확신이다.” – <빅토르 위고>

사랑은 마주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같은 방향을 보는 것이다” – <생텍쥐페리>

성숙하지 못한 사랑은 내가 당신을 필요로 해서 당신을 사랑합니다라고 말하지만, 성숙한 사랑은 내가 당신을 사랑해서 당신을 필요로 합니다라고 말한다” – <에릭 프롬>

 

구구 절절 다 옮은 말이지만, 장영희씨는 이 중 <논어(12 10)>에 나오는 애지 욕기생, 愛之, 欲其生”,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말을 압권으로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단순해 보이지만 산다라는 말은 사랑의 모든 것을 이야기합니다.

 

시편 23편은 양과 목자의 이야기입니다. 양은 스스로 똑똑한 척 하지만, 혼자서 살아갈 수 없습니다. 양은 똑똑하지 않습니다. 양은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도 없고, 싸울 수 있는 뿔도 없습니다. 그들은 세상에서 무력합니다. 양은 어디에 가야 풀이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알지 못합니다. 오직 목자로 인해 양은 살 수 있습니다.

 

양에게는 푸른 풀밭이 필요합니다. 가끔, 양들은 자기에게 해가 되는 독초나 이상한 것들을 먹고도 방끗 웃으며 메에거리므로 목자가 관리하는 양들을 위한 풀밭이 필요합니다. 양에게는 물이 필요합니다. 하지만, 양들은 깊은 물가에 갔다가 털이 젖어서 그 무게로 인해 익사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쉴만한잔잔하고 얇은 물가가 필요합니다. (23:2) 양은 철새처럼 방향을 찾을 수 있는 존재가 아닙니다. 방향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그들의 길을 인도할 사람이 필요합니다(23:3). , 늑대나 곰이 그들을 위협할 때 이빨도, 발톱도, 뿔도 없는 양들은 그들을 막대기와 지팡이로 보호해 줄 사람이 필요합니다(23:4). 양은 목자가 필요합니다. 선한 목자가 필요합니다.

 

그러면, 목자는 어째서 양을 돌보는 것일까요? 시편 23:3편은 당신의 이름을 위하여라고 이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선한 목자라고 소개하시는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서 이렇게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도둑은 다만 훔치고 죽이고 파괴하려고 오는 것뿐이다. 나는 양들이 생명을 얻고 더 얻어서 풍성함을 얻게 하려고 왔다. 나는 선한 목자다. 선한 목자는 양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린다.”

                                                                          - 요한복음 10:10,11 / 표준새번역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그 사람이 살게끔 하는 것이다라는 말처럼, 선한 목자는 양이 살 수 있게 하기 위해서 자기 목숨까지 버립니다.  사랑이라는 하나님의 또 다른 이름처럼, 하나님께서는 사랑이라는 자신의 이름으로 양을 살게 합니다.

 

고대 중동에서, 다윗의 시대에는 연회를 베풀게 되면 그 중의 귀빈들에게 특별히 머리에 향기로운 기름을 발라주는 풍습이 있었다고 합니다. 잔은 손님에게 보내는 메시지로서 사용되었습니다. 손님이 집에 초대되었을 때, 잔이 가득 차도록 계속 채워진다면, 그것은 손님에 대한 환영의 표시였습니다. 하지만 시간이 너무 늦어지거나, 주인이 손님이 지금 떠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되면 손님의 잔이 빈 채로 유지되도록 하였습니다. 즉 다시 말하면 잔이 채워지는 동안 손님은 그 집에서 환영 받는 존재입니다. 주인이 손님의 방문을 진심으로 기뻐할 때는 손님의 잔이 넘쳐 상이 흠뻑 젖도록 가득 잔을 따랐습니다. 이는 주인이 손님의 방문을 너무 기뻐하며 계속하여 머무르기를 요청하는 메시지입니다.

 

원수들은 때로는 우리를 두렵게 하고, 우리를 참소하기도 하고, 우리를 걸려 넘어지게 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영으로 우리와 함께 하는 하나님은 모든 상황 속에서, 원수가 보란 듯이 우리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시고, 한 상 가득 차리시고, 우리가 그의 집에 거하기를 기뻐하십니다. (23:5).

 

세상에는 선한 것이 없어 보입니다. 때로는 사람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스스로 실망하기도 합니다. 좋지 않은 상황들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때로는 낙심도 합니다. 하지만, 모든 상황 속에서 자신을 의지하지 않고, 단순히 양으로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의지하며 목자를 따라가는 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축복이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세상을 살아가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우리가 아무리 돈을 벌고, 똑똑해지고, 유명해지고, 권력을 가지게 되더라도, 우리는 몸과 마음을 스스로 지킬 수 없습니다. 무력한 존재임을 인정할 수 밖에 없습니다.하지만, 그 속에서 우리는 두려움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양으로,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영을 받았습니다.(로마서 8:15)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집에 영원히 거하는 희망 속에서 살아갑니다. (23:6)

Posted by kkc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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