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8.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9.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드러났으니, 곧 하나님이 자기 외아들을 세상에 보내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그로 말미암아 살게 해주신 것입니다.

10. 사랑은 이 사실에 있으니, 곧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셔서, 자기 아들을 보내어 우리의 죄를 위하여 화목제물이 되게 하신 것입니다.

11.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이렇게까지 우리를 사랑하셨으니, 우리도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12. 지금까지 하나님을 본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계시고, 또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가운데서 완성된 것입니다.

- 요한일서 4:7-12 (표준새번역)

 

오늘 본문은 요한 1서 4장 7절에서 12절입니다. 요한 1서는 사도 요한에 의해서 기록되었는데, 여러분도 잘 아시다시피 그는 또한 요한복음 및 요한계시록의 저자입니다. 요한 1서의 대상은 불신자가 아니라 이미 복음을 받아들인 신자를 대상으로 쓰여 있습니다. 이 글이 쓰여진 당시에는 가현설이라는 교리가 사람들을 현혹시키고 있었는데, 쉽게 이야기하면 예수는 하느님이기에, 인간으로서의 몸은 환상일 뿐이라는 영지주의 교리입니다. 더 간단히 말하면 예수는 사람의 탈을 쓰고 왔으므로, 사람이 아니라면서 예수의 인간성을 부정하는 교리입니다. 따라서 예수가 십자가에 달리고 고난 받은 것은 환상일 뿐이며, 그가 죽고 부활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고 영지주의자들은 주장하였습니다. 1) 2)

요한은 4장 1절부터 6절을 통해 안타까운 마음으로 그리스도의 영과 거짓 예언자들을 구별하는 분별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는 친절하게 "예수 그리스도안에 복음이 있으니까, 이 거짓 복음은 이렇게 구별해야 해" 라고 말하며 영 분별에 대해서 설명하다가, 갑자기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라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조금은 쌩뚱맞아 보일 수 있습니다. 실제로 어떤 신학자는 "요한 사도가 반갑지 않은 주제를 대강 처리하는 거 같은데?"라고 이야기하기도 합니다. 3) 하지만, 재미있는 사실은 바울 또한 갈라디아서를 통해 "할례를 받지 못하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라는 거짓 복음에 직면하여,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니까!"라고 열심히 설명하다가, 문득 이렇게 말합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을 부르셔서, 자유를 누리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그 자유를 육체의 욕망을 만족시키는 구실로 삼지 말고, 사랑으로 서로 섬기십시오. 모든 율법은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여라" 하신 한 마디 말씀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13-14절) 그들은 사랑으로 복음을 분별할 수 있음을 알고 있었습니다. 사랑이 복음의 중심이라는 생각은 요한이나 바울에게서 처음 나온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7장에서는 예수님이 잡히시기 전에 마지막으로 하셨던 기도가 소개되어 있는데 그 때 예수님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21. 아버지,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어서 우리 안에 있게 하여 주십시오. 그래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믿게 하여 주십시오.

22.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영광을 그들에게 주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인 것과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23.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신 것은, 그들이 완전히 하나가 되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것은 또,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셨다는 것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과 같이 그들도 사랑하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게 하려는 것입니다.

- 요한복음 17장(표준새번역)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우리가 하나되기를, 그리고 서로 사랑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예수님의 슈퍼파워로 모든 기도가 짠 하고 이루어지는 모습을 생각하지만, 예수님은 마지막까지 우리가 서로 사랑하기를 중보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사랑이란 무엇일까요? '바보가 바보들에게'라는 책에서 김수환 추기경님은 사랑에 대해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이란 무엇인가?

 

사랑이란 무엇인가?

남에게 자기 자신을 완전히 여는 것입니다.

외적 인물이 잘나서 또는 장점이나 돈, 지위 때문에

사랑하는 것이 아니고, '그 사람'이기 때문에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사람의 기쁨을 나눌 뿐 아니라

서러움, 번민, 고통을 함께 나눌 줄 아는 것,

잘못이나 단점까지 다 받아들일 줄 아는 것,

그의 마음의 어두움까지 받아들이고

끝내는 그 사람을 위해서 목숨까지

바칠 수 있는 것이 참 사랑입니다.

 

그래서 참 사랑은 행복하지 않습니다.

남의 고통을 자기 것으로 삼을 만큼 함께

괴로워할 줄 아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 김수환 추기경의《바보가 바보들에게》중에서 -

 

제가 대학부 시절 목사님은 결혼식 주례 때마다 같은 말씀을 전하셨는데, 그것은 '좋아함'과 '사랑함'의 차이점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늘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고양이는 쥐를 좋아하지만 사랑하지는 않습니다." 사랑은 헌신을 필요로 합니다. 사랑은 생각보다 마냥 아름답고 즐겁지는 않습니다. 누군가를 사랑한다는 것은 자신을 상처에 대한 무방비 상태로 내어놓는 일입니다. 사랑은 공짜가 아닙니다. 사랑은 고통을 수반합니다. 당신이 관계를 맺는다는 것은, 그 관계로 인하여 상처 받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 뿐 아닙니다. 사람들의 속성에 대한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하였습니다.

 

사람들은 흔히 비이성적이며 논리적이지도 않고 그리고 이기적이다.

당신이 사람들에게 친절하고 상냥하게 대하면 사람들은 당신이 속셈을 숨기고 있다고 의심할 것이다.

당신이 성실하고 정직하게 살더라도 사람들은 그대를 속여서 마음을 아프게 할 것이다.

당신이 평온하고 행복한 삶을 산다면 사람들은 당신을 시샘하여 질투할 것이다.

오늘 당신이 사람들에게 착한 일을 행해도 사람들은 내일이면 그것을 곧잘 잊어버릴 것이다.

당신이 가진 모든 것을 세상을 위해 아낌없이 베풀어도 세상은 결코 충분하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어떤 냉소적인 이가 사람들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했을까 의아하실 지 모르지만. 이 말은 테레사 수녀님의 시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물론 테레사 수녀님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하라고 이야기하고 있지만, 사람을 사랑하는 것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예수님 조차도, 예수님을 사랑한다고 고백하고, 찬양했던 그 사람들에게 붙들려 배신을 당하여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이 없는 곳은 지옥과 같습니다. CS 루이스는 그의 저서 '네 가지 사랑'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사랑한다는 것은 결국 약해진다는 것이다. 마음을 절대 다치지 않으려거든 아무에게도 마음을 주지 않으면 된다. 동물한테도 마음을 주면 안된다. 취미와 소소한 사치로 마음을 꼭꼭 동여매라. 모든 연줄을 피하라. 이기심이라는 관 속에 마음을 안전히 가둬 두라. 그러나, 안전하고 어둡고 공기가 통하지 않는 그 부동의 관 속에서 마음은 변질될 것이다. 상처도 모를 것이다. 깨질 수도 없고. 뚫고 들어갈 수도 없고, 구원받을 수도 없는 마음이 되고 말 것이다. 천국을 제외하고 사랑의 위험에서 완전히 안전하게 피할 수 있는 유일한 곳은 지옥이다.

 

이와 동일하게 성경은 세상의 끝에서 참 사랑이 사라질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4)

1 그대는 이것을 알아두십시오. 말세에 어려운 때가 올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자기를 사랑하며, 돈을 사랑하며, 뽐내며, 교만하며, 하나님을 모독하며, 부모에게 순종하지 아니하며, 감사할 줄 모르며, 불경스러우며,

3 무정하며, 원한을 풀지 아니하며, 비방하며, 절제가 없으며, 난폭하며, 선을 좋아하지 아니하며,

4 배신하며, 무모하며, 자만하며, 하나님보다 쾌락을 더 사랑하며,

5 겉으로는 경건하게 보이나, 경건함의 능력은 부인할 것입니다.

- 디모데후서 3장 (표준새번역)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죽음에 머물러 있습니다. (3장 14절) 사랑이 없는 곳에는 하나님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사랑은 서로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사랑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기도회를 하고 하고, 방언도 하고, 사람을 고치고, 산을 옮길만한 믿음을 가지고 있을 지라도,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면 그것은 아무런 이로움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장) 그러나,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우리의 삶에 생명에 있고, 사람들이 그 생명을 보게 될 것입니다. 바로 그것이,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우리에게 소망하셨던 것입니다. 요한복음 13장에서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말합니다.

이제 나는 너희에게 새 계명을 준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모든 사람이 그것으로써 너희가 내 제자인 줄을 알게 될 것이다."

A new commandment I give unto you, That ye love one another; as I have loved you, that ye also love one another. By this shall all men know that ye are my disciples, if ye have love one to another

- 요한복음 13:34,35

 

하나님의 계명은 율법에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곧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고,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대로 서로 사랑하는 것에 있습니다. (요한일서 3:23) 우리 안에 사랑이 없다면, 우리는 사람들에게 참된 예수를 전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사람들은 그것으로써 우리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나눔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조선시대의 유학자인 유한준은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5) 우리가 사랑 안에 거할 때, 우리는 하나님을 알게 되고, 보게 되고, 새로운 삶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비록 사랑이 때로는 우리를 슬프게 하고, 아프게 하더라도,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야만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깊이 머무르시고, 그분의 사랑이 우리 안에 완성되어 완전한 사랑이 됩니다. (요한일서 4:12) 우리 모두가 그 사랑 안에서 삶을 경영하기를 축복합니다.

 

1) 성경대사전: 요한 1서

2) 위키백과: 가현설

3) 위클리프 주석: Plummer, the Epistles, p.99

4) 디모데 후서 3장은 고린도 전서 13장과 대조하여 볼 수 있습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친절합니다. 사랑은 시기하지 않으며, 뽐내지 않으며, 교만하지 않습니다.

사랑은 무례하지 않으며, 자기의 이익을 구하지 않으며, 성을 내지 않으며, 원한을 품지 않습니다.

사랑은 불의를 기뻐하지 않으며, 진리와 함께 기뻐합니다.

고린도전서 13장 (표준새번역)

5) "사랑하면 알게 되고, 알게 되면 보이나니 그때에 보이는 것은 전과 같지 않으리라"

"知則爲眞愛 愛則爲眞看 看則畜之而非徒畜也"

(지즉위진애 애즉위진간 간즉축지이비도축야)

- 조선 정조시대 문장가 유한준(兪漢雋, 1732 - 1811)

 

Posted by kkck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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