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은 하나의 질문으로 시작하려고 합니다. 여러분은 자유 한 삶을 살고 있습니까?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자유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아니하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여러분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입니까? 물론 우리들은 육체적으로 자유로운 국가에서 살아가고 있고, 영적으로 예수님을 아는 사람들로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자유로움에 대한 대답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예수님께서는 자유함에 대한 언급을 여러 번 하셨는데, 그때 유대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아무에게도 종노릇한 일이 없는데, 당신은 어찌하여 우리가 자유롭게 될 것이라고 말합니까?" 그때 예수님은 대답합니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죄를 짓는 사람은 다 죄의 종이다. (요 8:33-34)"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영접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갑니다. 하지만, 새로운 삶이 우리에게 늘 기쁨과 자유를 선사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 교사인 찰스 트럼불(Charles Trumbull)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에게 있어 영적인 삶과 하나님과의 친밀함은 요동치고 있었습니다. 때때로 나는 영적으로 잘 지내고 있는 것처럼 느끼며 살아갔지만, 때로는 바닥을 치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곤 했습니다. 힘있는 부흥 집회, 헌신되고 구별된 크리스천 리더의 설교나, 영적인 책이나, 예배에서 헌신된 기도를 드리고 나면, 나는 기쁨을 느끼고, 하나님과 더욱 친밀해진 기분과 함께 내 영적 삶이 더 깊어진 것처럼 느끼곤 했습니다. 그러나, 그 감정이 지속되지는 않았습니다. 때로, 작은 유혹들에 넘어지거나, 점진적인 영적 내리막을 걷게 될 때면, 나의 좋았던 경험들은 다 잃어버리고, 비참한 상태에 빠진 내 자신을 발견하곤 했습니다.
- Grace Walk, Steve McVEY, pp.16 |
이러한 고백은, 많은 크리스천들이 고민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부흥 집회를 갈 때나, 기도와 성경공부로 시간을 보낼 때는, 우리는 승리의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삶 속에서 작은 유혹들에 넘어지거나, 우리가 싫어하는 사람을 만나고, 내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문제에 부딪칠 때면, 우리는 패배감을 느낍니다. 심지어 우리가 아무런 잘못을 저지르고 있지 않을 때에도, 내가 크리스천으로 행하고 살아야 하는 것들을 하지 않을 때면, 죄책감과 책임감이 우리를 괴롭히기도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하나님 앞에서 다시 열심히 살아보겠다고 약속하고, 성경을 더 읽고, 기도를 더하고, 전도를 더하고, 프로그램에 열심히 참여하더라도 우리는 다시 비참한 실패를 경험합니다. 1)
이에 대해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18. 나는 내 속에 곧 내 육신 속에 선한 것이 깃들여 있지 않다는 것을 압니다. 나는 선을 행하려는 의지는 있으나, 그것을 실행하지는 않으니 말입니다. 19. 나는 내가 원하는 선한 일은 하지 않고, 도리어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합니다. 20. 내가 해서는 안 되는 것을 하면, 그것을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내 속에 자리를 잡고 있는 죄입니다. 21. 여기에서 나는 법칙 하나를 발견하였습니다. 곧 나는 선을 행하려고 하는데, 그러한 나에게 악이 붙어 있다는 것입니다. 22. 나는 속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나, 23. 내 지체에는 다른 법이 있어서 내 마음의 법과 맞서서 싸우며, 내 지체에 있는 죄의 법에 나를 포로로 만드는 것을 봅니다. 24. 아, 나는 비참한 사람입니다. 누가 이 죽음의 몸에서 나를 건져 주겠습니까?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나를 건져 주신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그러니 나 자신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섬기고,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고 있습니다. - 로마서 7장 18-25 (표준새번역) |
본문 7장 21절에서 바울은 죄의 속성을 법칙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전적 정의에 의하면 법칙이란 모든 사물과 현상의 원인과 결과 사이에 내재하는 보편적, 필연적인 불변의 관계를 의미합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예를 들면, 여러분이 성경책을 높이 들고 있다고 생각해봅시다. 한 시간 두 시간 그리고 길게 세 시간은 들고 있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러분은 결국 이를 내려놓을 수 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여러분은 만류인력의 법칙을 거스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와 동일하게, 우리는 하루, 이틀, 한달, 그리고 길게는 몇 년 동안 정결하게 살아갈 수 있을 수도 있습니다. 2) 하지만, 우리는 결국 원하지 않는 악한 일을 할 수 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 모두는 비참한 사람들입니다. 마음속으로는 하나님을 따르지만, 결국 우리는 아무리 열심히 싸우더라도 선해질 수 없는 희망 없는 존재들입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바울은 로마서 8장을 통해 우리에게 희망을 이야기합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그가 말하는 희망은 우리가 완전해 질 수 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는 역설적으로 우리가 완전하지 않지만 정죄를 받지 않음을 이야기합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사람들은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2. 그것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당신을 죄와 죽음의 법에서 해방하여 주었기 때문입니다. 3. 육신으로 말미암아 율법이 미약해져서 해낼 수 없었던 그 일을 하나님께서 해결하셨습니다. 곧 하나님께서는 자기의 아들을 죄된 육신을 지닌 모습으로 보내셔서, 죄를 없애시려고 그 육신에다 죄의 선고를 내리셨습니다. 4. 그것은, 육신을 따라 살지 않고 성령을 따라 사는 우리가, 율법이 요구하는 바를 이루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 로마서 8장 1-4 (표준새번역) |
바울이 본문에서 이야기하는 율법에 의한 죽음의 법과, 성령의 법은 무엇일까요?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율법간의 관계를 결혼생활에 비유하였습니다. 율법과의 결혼은 불행합니다. 해야 하는 것들과 하지 말아야 할 것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설명해 보겠습니다. 여러분은 배우자의 율법에 의해서 집에서 설거지를 하루에 2번씩 해야 하고, 주 3회 청소기를 돌리고 주 2회 물청소를 해야 합니다. 당신은 7시 이후 TV를 보지 말 지며, 무한도전을 삼가야 합니다. 그 외에도 135가지 집안일을 지켜야 합니다. 물론 이것이 집안과 나에게 이롭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가 이 일들을 지키지 않는 것에 대해서 배우자가 기뻐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내가 이 일들을 지키지 않을 때마다, 나는 배우자에 대한 두려움과 정죄감에 사로잡혀 마음을 졸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참된 결혼 생활이 아닙니다. 이는 불행한 결혼 생활입니다. 이러한 결혼 생활을 끝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울은 로마서 7장에서 말합니다.
2. 결혼한 여자는, 그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는 법으로 남편에게 매여 있으나, 남편이 죽으면 남편의 법에서 풀려납니다. 3. 그러므로 남편이 살아 있는 동안에 그 여자가 다른 남자에게로 가면, 그 여자는 간음한 여자라는 말을 듣게 됩니다. 그러나 남편이 죽으면 그 법에서 해방되는 것이므로, 다른 남자에게로 갈지라도 간음한 여자가 되지 않습니다. 4.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그러므로 여러분도 그리스도의 몸으로 말미암아, 율법에 대해서는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다른 분, 곧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그분에게 속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위하여 열매를 맺게 하기 위함입니다. 5. 이전에 우리가 육신을 따라 살 때에는, 율법으로 말미암아 일어나는 죄의 욕정이 우리 몸의 지체 안에서 작용해서, 죽음에 이르는 열매를 맺었습니다. 6. 그러나 지금은, 우리를 옭아맸던 것에 대하여 죽어서, 율법에서 풀려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문자에 얽매인 낡은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성령이 주시는 새 정신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 로마서 7장 2-6 (표준새번역) |
바울은 예수님의 죽으심과 함께, 우리도 함께 죽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갈라디아서에 다시 한번 확실하게 말합니다. "그리스도 예수께 속한 사람은 정욕과 욕망과 함께 자기의 육체를 십자가에 못박았습니다." (갈라디아서 5장 24: 표준새번역) 바울은 그리스도에 속한 사람을 정의하며 '우리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다'고 말합니다. 이것은 앞으로 못이 박힐 것이라는 미래형이나 지금 못을 박아야 한다는 현재형이 아닙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여러분 안에 이미 이루신 일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이 예수그리스도를 영접하고, 그의 진리 안에 설 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을 누리게 하는 성령의 법이 죄와 죽음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여 줍니다. 바울은 바로 이 자유함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죄를 받지 않기 때문에, 죄는 우리를 구속하지 못합니다. 하지만, 우리 안에 정죄감의 감정은 여전히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성경을 따라 살지 못하는 삶 속에서 나쁜 일이 발생하면, 하나님이 벌을 내리신 것이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리고, 때로는 우리가 죄 속에 빠져 있을 때마다 하늘에서 분노를 참고 계신 하나님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하지만 반대로 생각해봅시다. 우리가 교회 일을 하고, 성경을 읽고, 착한 일을 하고 살아가면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우리가 사람을 미워하고, 죄 속에 허우적거리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미워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은 우리의 상태가 사랑 받을 만 해서 사랑하고 용납하는 것이 아닙니다. 또한, 하나님은 당신이 구원을 받을 만하고, 앞으로 죄 짓지 않는 사람이 될 것이라고 생각해서 당신을 위하여 죽으신 것이 아닙니다. 성경은 말합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습니다. 이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실증하셨습니다. (로마서 5:8: 표준새번역)" 우리는 완전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죄를 짓는 존재이고, 완전할 수 없는 존재입니다. 만약 우리가 완전하다면 우리는 예수님이 필요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아이러니 하게도 우리는 이러한 죄의 불완전함 속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더 경험합니다. 이에 대해서 바울은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욱 넘친다고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5:5). 마틴 루터는 우리가 죄를 짓기 때문에 죄인인 것이 아니라 죄인이기 때문에 죄를 짓는 것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이와 동일하게, 성경은 우리가 선한 일을 하기 때문에 선하게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에 속한 자가 되었기 때문에 우리는 죄에서 해방된다고 말합니다. 죄의 정말 무서운 점은 죄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죄가 인간의 생명에 하는 일은 가지치기용 가위가 한 떨기 꽃에 하는 일과 같습니다. 줄기를 잘라내면 꽃은 생명의 원천에서 떨어져 나갑니다. 처음 얼마간이야 물론 여전히 색깔도 곱고 싱싱하고 보기도 좋지만 시간을 두고서 그 꽃을 관찰해보면 잎은 시들고 꽃잎은 떨어질 것입니다. 무슨 방법을 동원해도 꽃은 결코 다시 되살아나지 않을 것입니다. 꽃 주위에 물을 뿌리고, 꽃줄기에 흙을 심고, 비료를 주고, 접착제로 꽃을 다시 원줄기에 붙여보더라도, 그 꽃은 이미 죽어 있습니다. 이것이 죄의 결과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잘려나간 영혼은 시들고, 결국 죽게 됩니다. 죄는 결과적으로 하루를 망치거나 기분을 나쁘게 하는 정도에 그치지 않고 영혼의 죽음을 초래합니다. 3) 죄의 가장 큰 파급력은 죄책감으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 그리고 이로 인한 영혼의 죽음입니다.
율법은 우리를 조금도 나아지게 하지 못합니다.. 우리가 피해야 할 죄들에 집중하는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를 죄로 인도합니다. 이는 다이어트를 하기를 원하는 우리가, 매일 매일 피자헛의 메뉴를 묵상하는 것이나, 담배를 끊기를 원하는 우리가, 매일 "난 담배를 끊어야지"하고 아침마다 다짐하며 담배를 묵상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삶을 나아지게 하는 모티브는 사랑입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내 계명을 지킬 것이다." (요한복음 14장 15절)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를 사랑하면, 네가 율법을 지킴으로 보여주어라"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당연히 우리가 그의 계명을 지키게 된다는 뜻입니다. 조금 전 결혼 생활의 예와 같이, 우리가 정말 배우자를 사랑한다면, 배우자를 위해 설거지도 하고, 청소도 하고, 배우자에 대한 사랑을 행동으로 보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랑이 없으면 이 모든 행동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성경은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이야기합니다. (로마서 13:10)
나눔을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워런 W. 위어스비는 로마서 8장을 그리스도인의 자유 선언이라고 이야기합니다. 사단은 계속하여 당신에 대해서 참소하며 정죄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기억하십시오. 여러분은, 이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사람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로마서 8:15) 우리는 율법에 속한 사람들이 아니고, 은혜에 속한 사람들입니다. 그 무엇도 이 진리를 빼앗을 수 없습니다. 바로 이 진리가, 진실로 우리를 자유케 하기를 소원합니다.
31. 그렇다면, 이런 일을 두고 우리가 무엇이라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우리 편이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겠습니까?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않으시고, 우리 모두를 위하여 내주신 분이,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선물로 거저 주지 않으시겠습니까? 33. 하나님께서 택하신 사람들을, 누가 감히 고발하겠습니까? 의롭다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신데, 34. 누가 감히 그들을 정죄하겠습니까? 그리스도 예수는 죽으셨지만 오히려 살아나셔서 하나님의 오른쪽에 계시며, 우리를 위하여 대신 간구하여 주십니다. 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곤고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위협입니까, 또는 칼입니까? 36. 성경에 기록한 바 "우리는 종일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합니다. 우리는 도살당할 양과 같이 여김을 받았습니다" 한 것과 같습니다. 37. 그러나 우리는 이 모든 일에서 우리를 사랑하여 주신 그분을 힘입어서, 이기고도 남습니다. 38. 나는 확신합니다. 죽음도, 삶도, 천사들도, 권세자들도, 현재 일도, 장래 일도, 능력도, 39. 높음도, 깊음도, 그 밖에 어떤 피조물도, 우리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 - 로마서 8장 31-39절: 표준새번역 |
1) 더 자세한 내용을 보고 싶은 분은 '은혜가 내 안으로 들어오다 (스티브 맥베이)'를 참고하세요.
2) 이 비유는 이경욱 선교사님의 강의를 참고하였음을 밝힙니다.
3) 이 비유는 예전에 어떤 책에서 메모해놓았던 것인데, 책 제목이 생각나지 않네요. 아는 분은 알려주세요.